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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살기 수도권모임 3월 정기모임이 317일 오후 730분 향린교회 향우회실에서 열렸다. 전국모임 총회 이후 새롭게 꾸려진 임원진이 이끌어가는 첫 모임이라 그 의미가 새롭다. 그동안 명사 초청강연회 형식으로 정기모임이 진행되었던 것을 보다 강화하여 기틀을 잡고자 한 흔적이 역력한 모임이었다.

그동안은 외부의 강사들을 초청하는 방식이었지만 이번 모임부터는 예수살기 내부에 있는 다양한 인적 역량들을 강연의 주체로 세우는 방식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힌 김경호 목사(들꽃향린교회, 수도권모임 대표)는 예수살기 회원인 이승무 박사(강남향린교회)를 첫 강연자로 초청하였다.

이승무 박사는 서울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순환경제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순환경제로 가는 길’, 역서로는 그리스도교의 기원’(칼 카우츠키) 외 다수가 있다. 이 박사의 강연을 요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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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도서관에 꽂혀 있는 것을 보고 꼭 한 번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시간에 여유가 생겨 이 책을 보게 되었고 틈틈이 번역하게 되었다. 유물론에서 기독교를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흥미가 있었기에 그리스도교의 기원을 보게 되었다.

카우츠키는 토마스 무어와 그의 유토피아’, ‘새로운 사회주의의 선구자들이라는 저서를 통해 중세시대에 이미 있었던 공산주의 운동을 조명하였다. 그는 토마스 무어와 토마스 뮌쩌에 대한 관심으로 역사적 유물론을 통해 그리스도의 기원을 조명하고자 했다. 무어가 유토피아적 사회주의를 꿈꿨다면 뮌쩌는 노동자 운동을 대표함으로 대립하고 있는데 카우츠키는 이 대립이 이전 세기들로 소급하어 추적될 수 없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가졌던 관심은 교회 바깥에서 세상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회주의적 지식인이 그리스도교라는 현상과 그 역사를 어떻게 보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생태주의적 관심이 더해졌는데 사회주의는 물질의 순환, 재활용에 많은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카우츠키는 로마 사회의 몰락을 노예노동에 근거한 시스템으로 지력(地力)이 쇠퇴하고 인민의 핵심인 자유농민층이 해체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또한 당대의 사회주의가 기계적 유물사관을 따르는 것에 반대하여 인류학적 차원에서의 접근을 시도했다. 그에 의하면 역사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고 각 시대의 프롤레타리아는 전혀 다른 양태를 지닌 전혀 다른 존재로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시대적 배경에 대한 정확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로마시대에 노예경제가 증대됨에 따라 자유농민은 경제적으로 소외되었고 짐꾼, 행상인, 가내수공업자, 거지 등 도시 프롤레타리아 계층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몰락한 자유농민층은 대도시에서 즐기며 지내기를 좋아하는 룸펜 프롤레타리아를 형성하기도 했지만 기독교와 만나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였다. 당시 로마의 재기는 불가능했고 오직 초인적인 힘, 기적만이 구원이라는 생각이 팽배했다. 인민 최하층 다혈질의 열심주의자들은 기적을 믿기 시작했다. 구세주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당 위에 하늘나라를 세울 것이며, 그 나라에는 전쟁도 가난도 없고 기쁜, 평화, 풍요가 지배하고 끝없는 복락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으니 이 구세주는 바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 그리스도였다. 천년왕국의 대망은 원시 기족교의 정신생활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이다. 그러다보니 기독교는 룸펜프롤레타리아의 필요를 채워주는 방식으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실천적 공산주의의 경향이었다. 원시기독교의 승리는 신실한 열광만이 아니라 실천적 영향에 의한 것이었다. 이들은 현존하는 비참함을 몰아내려는 적극적인 시도를 하였다. 초기 기독교 운동은 순전히 대도시의 운동이었는데 이는 도시 노동자들의 척박한 상황이 성장의 토양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기원전 100년 경에도 실천적 공산주의 공동체가 있었다. 그것이 공산주의적 결사체 에세네파이다. 처음에 그리스도인들은 완전한 공산주의의 도입을 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생산수단의 공동소유 이후 무상으로 분배하는 것으로 끝나고 생산 활동을 하지 않는 공동체는, 생산을 지속해야만 하는 거대 사회 안에 기초를 세울 수 없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상황에 맞닥뜨린 공산주의적 초기기독교는 새로운 생산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공동소유를 인정하면서 공산주의적 전통을 폐기하지는 않더라도 탈색시키는 현실적 노력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순전한 물적 관계는 정신적인 관계로 재해석되기 시작하였다. 계급차별 종식의 이상은 무력해지고 다시 종교 내부의 계급대립도 생겼다. 교회는 제국의 권력에 충성하는 기구가 되었고 공동소유의 원칙은 순전히 개인적인 자유의사에 따른 기부로 약화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기독교의 공산주의적 사상은 로마제국 당시에는 물론 민족 대이동의 시기에 이르기까지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교회재산 공유가 지속되었고 어떤 공의회에서도 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은 기독교와 사회민주주의라는 카우츠키 당시의 현실인식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담고 있다. 사회주의 운동의 선구적 형태로서의 초기 기독교가 그 시대의 경제적 조건 때문에 사회주의 운동으로서 실패하고 지배적 제도조직으로 변질한 반면 카우츠키 당시의 자본주의 생산양식 하에서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 운동은 사회경제적 토대가 과거와는 다르기 때문에 결국 승리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낙관은 지나친 측면이 없잖아 있다. 그리고 그 낙관은 후에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에 의한 소비에트 공산주의를 사회주의의 혁명으로 승인하지 않음으로서 수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카우츠키는 유물론적 역사관을 피력함에 있어 지도자가 대중운동의 활동력을 확정하는 요인들 중 하나일 뿐,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아니라고 보았다. 즉 개인에 대한 천부적 자질로만 설명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점과 조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함을 역설한 것이다. 운동은 그 시대와 민족의 사회적 전체 과정과 결부시켜야만 한다. 이런 원칙을 따를 때 개별 인물과 운동들의 역사에서 조명되지 않은 부분을 규명할 수 있다. 이것이 카우츠키가 말하는 유물사관이며 우리가 학생시절 제도권의 반공교육으로써 접한 역사에 대한 도식적인 단계적 이해로서의 유물사관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다. 이는 특정 목적에 치우친 집단 내부와 그 바깥에서 생산된 폭넓은 사료를 검토하고 역사적 사건들을 물적 배경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이를 자료를 통해 입증해 가면서 전체적인 사태전개의 그림을 그리고, 사료에서 발견되는 공백에 대해서도 그 그림을 근거로 빈자리를 채워나가는 방법이다.


우리민족의 역사관은 논리적 비약, 과도한 이념, 신비주의, 영웅주의에 바탕해 있는 것이 많아 듣는 이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신비주의나 유아(唯我)론적 역사관은 독일 제3제국으로 귀결된다. 구소련의 도식적인 교과서적 유물사관은 공포정치로 귀결되며 정신적인 요소가 강한 주체사관도 현대적이고 과학적인 역사관이 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카우츠키는 지성과 상식을 벗어난 역사서술을 하지 않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사회주의 혁명이란 목적이 독재정치나 공포정치의 수단으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류의 보편적인 지성과 상식을 벗어나는 요소를 포함한다면 그 세력의 주류세력화는 굉장히 위험하다.


카우츠키의 그리스도교의 기원은 지금의 한국과 세계에서의 그리스도교라는 실체에 관해 시사점을 준다. 현재의 물질적 질서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고 어떻게 변화해가고 있는지를 먼저 이해하고 이러한 물질적인 변화과정에 부합하여 정치와 문화, 그리고 종교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 가는지, 어떤 역할을 담당해 가는지를 설명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거시적인 안목과 문명사적인 시야가 필요하다. 교회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적 환경적 조건의 산물임을 냉정하게 관찰하고, 환상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카우츠키에 의하면 그리스도교는 예수라는 사람에 의해서 비롯된 신앙이 어떤 알맹이나 불씨를 제공한 것이 아니라 로마와 그리스, 팔레스티나를 중심으로 한 지중해권의 경제사 전개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의 핵심은 하층계급의 억압적 경제체제에 대한 강한 저항으로서 공산주의적 공동체의 지향이 생명이라고 보았다.


교회의 중심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 너무 강조되고, 신도들은 교회에 와서 오히려 신을 잘 모시지 못한데 대한 죄의식과 소외감, 심지어 박탈감을 느낀다. 인민의 생명력의 분출로서 살기 위한 공동체를 이룬 것이 교회가 아니라 늘 미안해야 하고 늘 떳떳치 못한 마음을 갖게 만드는 것이 지금의 교회가 아닐까. 경제가 잘 나가던 시절의 교회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시대의 교회의 역할은 어떻게 다른가? 엥겔스와 카우츠키는 그리스도 공동체를 계승하는 것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정당성이라고 보았다. 지금은 그것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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